사학법 개정의 본질
가져온 곳 : http://blog.daum.net/tjryu
※사학법 개정의 본질은 재산의 항구적 상속을 허락치 않는 법정신에 있습니다. 사학이 각종 세제 혜택을 받으며 나라의 시스템으로서 보호를 받는 것은 그 공익적 목적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학이 오히려 부의 항구적 세습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언론이 수구 기득권과 이해를 같이하는 상황에서 주권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올바르게 판단하도록 활발한 논의가 되는지 여부는 우리 사회의 진보에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취지에서 서프라이즈 곰배령(세무사 목향원)님의 글을 퍼옵니다.(옮긴이 주)
한나라당이 사학법 개정에 목을 매는 진짜 이유는?
현재 합법적으로 상속세를 내지 않는 방법은 딱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가지고 있는 재산으로 공익목적의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는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공익목적의 비영리법인으로는 사학재단 등이 대표적인 것이며, 영리법인에 투자하는 것을 출자라 하고 출자는 언제든지 회수할 수 있고 출자비율만큼 청구권을 가지게 되나 비영리법인에 투자하는 것은 출자가 아니라 출연이라 한다.
여기서 출연이라 함은 버린다는 뜻이다. 즉 기부와 같은 개념이므로 한번 출연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재산권행사가 불가능하고 비영리법인이 해산하게 되면 비영리법인이 소유한 재산은 국가로 귀속되거나 동일한 고유목적을 가진 다른 비영리법인에 출연해야 한다.
그러므로 출연한 재산에 대하여는 상속인에게 아무런 재산적 권한이 없으므로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맹점을 이용하여 비영리법인을 설립하고 있다. 출연한 자와 특수관계에 있는 자를 이사와 이사장으로 선임하여 그 재산을 독점적으로 이용하거나 운영 수입 중에서 매월 인건비 명목으로 수입을 얻는다면 상속세와 다른 세금을 물지 않고 대대로 물려가며 그 재산으로 혜택을 보게 되므로 이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암울한 시기에 사재를 털어 가며 사학을 설립하였던 이 땅의 선각자들은 이런 생각은 티끌만큼도 생각지 않았겠지만 현재의 사학은 전부가 이런 선각자들의 숭고한 뜻을 그대로 이어간다고 볼 수 없고, 이런 숭고한 건학이념의 용어만을 차용하여 방어논리로 활용하면서 부실사학으로 사실상 영리목적으로 운영하는 사학도 부지기수일 것이다.
바로 이런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는 것이 사학법개정이나 이를 건학이념을 침해한다며 반발하고 이에 동조하는 한나라당의 태도, 한 발 더 나아가 이를 빌미로 지난 2년 연속으로 예산안까지 볼모로 삼았던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처사다.
현재 쟁점이 되고 있는 부분은 개방형이사의 추천주체를 확대할 것인지, 아니면 지난해 개정된 법률을 고수할 것인지가 최대 쟁점이다. 개방형이사의 추천주체를 확대하자는 것은 개방형이사제도를 유명무실하게 만들자는 뜻이다.
개방형이사는 전체 이사의 1/4에 불과하므로 이들의 의사는 이사회의 의사결정에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므로 그들이 말하는 건학이념을 훼손시킬 염려가 전혀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개방형이사제도에 사학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이사장의 전횡을 막을 수 있는 개방형이사가 가진 견제권 때문이다.
영리법인이나 비영리법인이나 모든 법인의 의사결정은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것이고 이사회의 결정내용은 회의록으로 기록되어 보존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에 있어서는 이런 이사회를 개최하지 아니하고 서류상으로만 이사회를 개최한 것처럼 허위기록으로 남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사들의 도장을 이사장이 보관하여 허위의사록을 만들어 가며 온갖 탈법을 일삼고 있으므로 그 전횡을 견제할 수 방법이 바로 개방형이사제도다. 개방형이사 때문에 거짓 회의록을 만들 수 없게 하자는 것이 개방형이사제도의 도입목적이므로 그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를 무력화하자는 것은 뒤가 구린 사학들이며 정상적인 사학들은 개방형이사제도를 법률로 강제하기 전에 이미 스스로 개방형이사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도대체 한나라당이 개방형이사제에 목숨을 건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 박근혜와 관련된 영남대 때문일까, 그렇다면 조금 이해는 간다. 그렇지 않고는 나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다.
H고교는 여전히 강남 8학군의 한 자리를 별 문제 없이 지키고 있지만, D대학은 커다란 민주화의 풍파를 겪고 총장이 바뀐 상태입니다. 졸업생으로서,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후배들과 교수님들의 투쟁과 삭발의식은 가슴 한켠을 쓰리게 했죠.
지금 생각해보건대, 저는 분명 학교의 비리를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주위 친구들, 부모님 또한 마찬가지였죠. 우리는 사학의 비리 정도야 그저 케케묵은 폐단 정도로만 생각했던 겁니다. 몇 십 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온 나무의 뿌리가 썩어있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던 거죠.
한나라당, 종교계, 사학재단과 정부 여당이 사학법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학재단의 투명성 확보인가, 사유재산화의 침해인가. 학생들을 위한 비리 근절인가, 전교조의 학교 장악인가. 양쪽의 대립은 팽팽하지만 ‘학생들을 위해서’라는 말은 이구동성으로 합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인 학생들은 조용합니다. 자신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문제인데도 말입니다. 공부 때문에 바빠서일까요, 아니면 큰 문제의식을 못 느껴서일까요.
과거 D대학에서 비리 문제가 불거져 나왔을 때에도 대부분 학생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일부 학생들의 투쟁만이 지속됐고, 급기야는 단식투쟁을 벌이던 학생들이 아무도 없던 휴일, 조직폭력배와 같은 사람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은 학교 신문을 통해 알려졌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성적, 진로, 취업을 먼저 걱정했습니다. 물론 화가 나고 괴로운 일이었지만 자기 자신의 일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할 용기도, 자신도 없었던 거죠.
우리 사회의 ‘허리’부분인 386세대는 국가의 정책에 반발하며 최루탄을 던지고 피를 흘렸던 학생들이었습니다. 분명, 방법은 잘못됐지만 자신보다는 나라를 걱정하던 세대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인터넷에서 대통령을 욕할 수도 있는 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일까요. 우리는 앞에서 당당한 말 한마디 하지도 못하고, 사회와 공동체 보다는 나만을 생각하는 듯 합니다.
당장은 나 자신의 문제가 중요하지만, 넓은 시야로 봤을 때 우리는 사학재단과 교육 자체의 본질에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사학비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지속돼지만, 근본적으로 공교육을 활성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에서 질책을 면할 수 없습니다. 사회의 공공재로써 분명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에게 문을 열어놓고 신뢰를 회복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법이나 특정세력의 비난이 아닌, 여러분의 문제의식입니다. 세계적인 시인이자 철학자인 칼릴 지브란은 “교육은 그대의 머릿속에 씨앗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그대의 씨앗들이 자라나게 해 준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씨앗을 자라게 해 줄 교육. 오염된 물은 씨앗을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교육에 깨끗한 물이 흐르게 할 수 있는 것은 학교의 주인인 당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