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事

요새는 게나 고둥이나 카메라 들고....

들풀처럼1 2011. 11. 29. 13:00

 

 

 

 

해남하면 떠오른 게 대흥사다.

이렇게 각인 되기까지는 내 주변에서 회자된 해남 대흥사에 관해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리 됐을 거라 이해한다.

이는 절 입구의 부도탑과 절안의 탑이나 절집이 자연과 어울려 보여준 뛰어난 공간미가 그리했을 거라 짐작된다.

어떻든 해남 대흥사는 여러 차례 갔었지만 마음먹고 오른 암자는 도솔암에 이어 이번의 북미륵암이다.

 

처음 가는 곳은 어디던 기대와 설렘이 있듯

북미륵암도 예외가 아닐 것이 사전 준비 없이 후배의 전화만 받고 따라 나선 것이라 그렇다.

산사의 오솔길은 낙엽과 전날 뿌린 비가 어우러져 특이한 향을 뿜었고 내 코는 오랫만에 상쾌한 호사를 누렸다.

북미룩암을 향하며 도회의 일상에서 심폐의 깊은 곳까지 박혔을 잡 것들 내 보내려고 심호흡을 연신했다.

바닷가에 가면 심호흡하는 버릇처럼

 

북미륵암으로 향하며 마애상이 있다는 일행의 이야기를 들었는데 막상 당도해 보니

마애여래좌상이 용화전이라는 이름의 건물에 갖혀있었다.

많은 생각과 논의가 있어 그리 됐겠지만 

미래에 나타날 보살이 철장에 갖힌 느낌이었고

자연과의 조화를 바탕으로 조각했을 당시의 작가 의도는 사라지고

가련하게도 혼신을 다하며 조탁했을 평안한 마애여래좌상이 농락되고 학대받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가두지 않으면 내 것이 아님에 연연하는 실수가 아닌지 모르겠다.

 

일행은 용화전에 들어가 예을 갖추고 살피고 나왔는데

그때 암자를 찾은 청춘 남녀 중 카메라를 맨 청년이 용화전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온 것이다.

그 때 요사채에서 나타난 스님이 청년을 향해

매몰차고 큰소리로

"총각,방금 사진 찍었어."

"예."

"문화재를 찍으려면 허락 받고 찍어야지"

"예, 잘 못했습니다. 파일 당장 지우겠습니다."

"요새는 게나 고둥이나 카메라 들고 다니며... ..."

 

고요한 산사를 흔드는 비명소리처럼 들렸다.

남의 것을 피사체로 담을 때는 주인 허락을 받는 것은 상식이고 너무도 당연하다.

그렇지 못할 때는 저지 당하는 것 또한 그렇다.

그러나 꼭 이렇게 여자 친구 앞에서 나이 어린 자식 같은 청년에게 수치감 주며 지도하는 것이 좋은 방법이고

청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카메라 들고 서 있었던 우리 일행은 뭐란 말인가?

금새 나는 '요새는 게나 고둥이나 카메라에 들고 다니며.....'에서

카메라를  '스님'로 대치 시키고 있었다.

순간 미친 정당, 미친 언론, 미친 종교, 미친 검찰도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도 두륜봉 정상까지는 가야했다.

정상에서 만난 울산에서 왔다는 내외분과 음식을 나누고

멀리 보인 산상 낙조의 아름다움을 가슴에 새기며

어둑해진 숲에서 본능적인 빠른 발걸음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다.

여름 복장을 한 산행이었지만 땀이 온몸을 덮었다.

주차장에 도착했을 땐 선명한 초승달이 서산에 걸려있었다.

“전에는 종교가 세상을 걱정했다. 지금은 종교 때문에 국민이 근심하고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는 도법 스님의 말씀을 떠 올리며 차에 올랐다.

 

북미륵암에서의 청년의 실수가 그렇게 천박하게 짓밟히는 것을 보고도

손잡아 주지 못했던 후회가 밀려온다.

舌是斬身刀(설시참신도),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

말조심하며 살아야겠다.

불원천리 찾아 왔을 청춘 남녀에게 종교는, 불교는, 스님은 과연 어떻게 비쳤을까?

그에게 부디 쓰라린 상처가 아니길 바란다.

 

 

 

 

 

▲ 국보  제308호, 해남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 (海南 大興寺 北彌勒庵 磨崖如來坐像)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이 때만 해도 건물 안에 갖힌 마애여래좌상은 아니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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