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장엄한 일출이기를 기대했지만... ....
그래도 정자에 올라 수평선을 바라보는 여유가 있는 바다는 무척 좋았다.
바다는 늘 여유가 널려있고 이런 여유를 누군가는 행복이라 했다.
오직 혼자뿐인 정자였기에 간섭 없는 상상 자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내 고향을 꺼내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고향 언덕바지에 서있던 상수리나무, 그 나무 곁에서 내려다 본 시냇물과 큰들이 그것이었다.
이것들은 또래들을 키웠고 많은 생물들도 품었다.
또래들은 도토리를 얻으려고 큰 돌맹이나 매로 상수리나무에 수없이 충격을 줬다.
그래야 알밤이 빠지고 그래서 줍게 된 둥근 상실은 유리구슬 대용으로 구슬치기로 애용했다.
이래서 상수리나무는 상처투성이었고 나무는 아픈 상처를 아물게 하려고 진액을 흘렸다.
수액을 좋아하는 사슴벌레, 핀둥이, 말벌, 나비 등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몰려들었다.
자연이 또래들도 여기에 모였다.
놀이터이자 생태학습장이 된 게다.
그러나 우리를 키운 상수리나무는 벼가 익어가는 시기가 되면 수난을 겪어야 했다.
강을 건너 큰들에 벼농사를 지어야 하는 곳이라 추수를 위해 섶다리를 놓아야 했었는데
단단한 상수리나무는 교각용으로 제격이어 수난을 피할 수 없었다.
바위로 된 강변 낭떠러지를 따라 가꾸어진 상수리나무 숲은
도토리가 익어 알밤이 빠질 때 바위에 부딧친 소리,
떨어진 도토리가 바위를 타고 구르는 소리,
물속에 잠기는 소리까지 모두가 자연이 주는 고향의 음향이었다.
소리만이 아니었다.
강바닥까지 훤이 들여다 보이는 곳에 가라 앉은 도토리는 굴절 효과로 더 크게 보였고
잔 물결이라도 일렁이면 짙은 갈색을 띤 도토리는 수채화 속의 정물 이었다.
이제는 그곳에 서서 고향맛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어느 문중 땅을 그곳에서 태어나 군수까지 지낸 분이 매입하여 집을 짓고
통행을 할 수 없게 철재 팬스로 막아버렸다.
추억도 고향도 몽땅 갖혀버렸다.
달빛이 비치면 신비감을 주었던 초가을의 강변 풍경은 늘 그리움이었는데
이제 쓸쓸함으로 다가 오겠다.
不老, 不朽의 늘 청년인 바닷가에서
海鳴도 없는 평화로운 해변에서 黎明을 맞으며 고향을 만날 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