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事

겨우살이의 추억

들풀처럼1 2005. 11. 21. 13:53

내장산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숲이 있다.

수령200~300년되는

 

 

 

 

 

숲은 큰키나무 작은키나무 등 각기 다른 모습으로 자리하고 어울려 산다.

인간들은 서로 다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늘 갈등하지만  

 

 

 

 

겨우살이는 기생하면서 일부는 광합성도 한다. 그래서 반기생식물이고 일종의 나무라고 한다.

이 녀석의 열매는 점활질이 있어서 새의 먹이로 들어가도 그 게 없어지지 않고 배설되어 나무에잘 붙는다.

그 후 나무 위에서 싹을 틔우기 위한 필사의 노력이 따른다. 1년 2년 ...

 

 

 

겨우살이의 추억

 

세월 따라 늘어난 게 모임이다. 불어난 모임 중에 배낭을 메고 떠나는 모임이 있었다.

특별한 모임 명칭도 없이 그저 누군가 나서서 언제 어디 여행을 제의하면 알아서 준비하고 나서는 모임이었다.

 

선배로부터 지리산행 일정과 준비물을 알리는 전화가 왔었다.

당시 난 감기와 비염으로 산에 갈 몸이 아니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어렵게 되면 자기가 책임지고 업고라도 오겠다면서 망설이는 날 다그쳤다.

 

힙겹게 화엄사에서 출발하여 노고단, 임걸령을 지나 피아골로 향하던 중 일행 중 한 명이 나무 위에 있는 풀을 보고선 눈을 떼지 못한 거였다. 자연이 일행들이 멈췄고 나름대로 한마디씩을 하는데 내 친구 녀석은 ‘라이프지’에서 봤다면서 저게 ‘난’이라했다. 확신에 찬 어투였다.

그러나겨우살이는 높은 나무 위에 있고 땅거미도 들고 해서 야영할 곳을 찾는 것이 급선무라 지나칠 요량이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서울 말투의 한 쌍의 젊은 연인들이 멈추더니

“오빠, 우리 아버님이 저기 있는 난 기르고 계셔.”

  이 한 마디에 우리 일행은 더욱 더 난에 반해버렸고, 어떻게 해서라도 채취해보자는 탐욕이 동하기 시작했다. 텐트 외엔 다른 장비가 없는 우리로선 좀 전의 젊은이들에게서 채취할 만한 도구가 있는가 물었더니 자기들이 갖고 있는 작은 톱이 있는데, 어쩌구하면서

  “저 위 있는 난을 채취해서 반분합시다.”

하며 배분 제의를 해왔다.

덕분에 우리는 그 걸 채취했고 반분 당하는 것이 조금 야속했고 당시엔 안타깝기도 했었다.

피아골에서 야영을 마친 우리들은 다음날 오전 무슨 전리품이라도 얻은 양 배낭의 맨 위에 '난'을 메고 연곡사로 향했다.

난을 맨 친구는 '라이프지'에서 봤다던 덩치 큰 친구였다.

지나는 사람마다 뭐냐고 물었고 녀석은 어김없이 난이라며 싱글벙글이었다.

모두들 부러워했다.

 

그것도 잠시

우리들이 감시초소 같은 건물 앞을 통과할 때 손짓으로 우릴 부른다.

"아저씨 배낭 위에 뭡니까?"

"난인데요."

"허허허."

"이게 겨우살이라는 겁니다."

해발 몇 미터 이상에 살며, 반기생식물이고, 무슨 약효가 있으며 등등

그분의 장광설을 무식의 대가로 들어야 했다.

듣다보니 그분은 산림감시원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게 이런 경우일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철없던 시절의 내 모습이 부끄럽다.

산에 있는 건 가져 가도 된다는 한심한 우리들이었다.

 

이틀 동안의 산행으로 그렇게 심했던 감기와 비염이 깨끗해져 선배의 등에 업히는 일은 없었다.

산행이 내게 준 의외의 큰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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