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事

다시 군대가는 꿈 이제 그만(수정)

들풀처럼1 2006. 8. 23. 10:09

자원입대하여 해병으로 복무하다 제대한지 벌써 36년 세월.

아직도 난 다녀온 군대이건만 또 가야한다는 끌려가는 꿈에 몸서리친다.

치떨린다.

한국의 남성들이 제대 후 겪은 대표적인 가위눌림이 아닌가 한다.

 

후~

끔직하다.

 

이 건 군의 억압된 공포 분위기가 안겨준 잔재고 동시에 나의 업보다.

왜냐하면 스스로 지원해서 간 군대니까

조국이 내게 준 잔인한 선물이다.

 

평생을 이런 꿈꾸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

괴롭다.

징그럽다.

 

부정한 방법으로 병역을 미필한 자들은 도대체 무슨 꿈을 꿀까?

 

이 빛바랜 사진 한장, 내 군생활 기록의 전부이다. 오직 유일무이한

외풍 많은 벽돌막사에서 추운 겨울 보내며 시린 손 비비대며 식사당번하던 졸병시절이 스친다.

 

제발

군에 다시 끌려가는 꿈 이제 그만

제발 그만

 

키 큰 저 동기생은 어느 하늘 아래서 뭘하며 가는 세월 만지작 거릴까?

 

 

 

진해와 상남에서 훈련을 마치고 팔려나가는 첫날(부대 배치되던 날)

진해인가 삼량진인가에서 용산행 군용열차에 몸을 실었다.

장마비로 철도가 유실되어 신탄진역에서 철도가 복구 될 때까지 무작정 기다려야 했다.

용산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었다. 점심과 저녁을 굶은 채로

행상들이 트럭에 오른 우리들을 향해 노란 콩가루 묻은 찹쌀떡을 흔들며 입맛을 돋구었으나

땡전 한 푼 없는 병사들에게는 그림의 떡이었다. 그림의 떡이란 말이 이렇게 실감나기는 처음이었다.

 

 

사진에 보이는 병사는 훈련병의 딱지를 떼고 첫날밤을 보낸 병사다.

첫날밤 나는 괴로웠다. 온몸이 가려워 박박 긁어댔다.

이리 저리 뒤척이며 긁어대는 나를 보고 선임 수병이 내게 팬티 입고 자라고 명했다.

탈영병으로 예상된 것이다. 불침번이 여러 차례 내게 와서 자라는 명을 했지만 도무지 잘 수가 없었다.

내 몸은 굵게 굵게 여러 군데 엄지손가락만큼씩 하게 부풀어 있었고 핏빛이었다.

네 번째 불침번을 선 선임이 다가와서 왜 잠 안 자냐고 다그쳤지만 가렵다고 밖에 다른 말을 할 수 없었다.

군용열차에서 못 먹은 점심이 저녁과 함께 나왔었다.

열시쯤에.포식을 했었다.

한 번에 해치워서, 혹시 음식이 상한 거여서, 식중독 아닌가 하는 의심을 했지만 다른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하도 견디기 힘들어 혹 마루 침상에 뭐가 있나 싶어 매트를 재껴보니 새끼 손톱크기의 빈대들이 우굴대며 침상 틈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걸 본 불침번이 그때서야 내가 탈영 의심자가 아님을 알고 시멘트바닥 통로에서 판초우의를 깔고 자라는 명을 했었다.

 

지금도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어찌해서 나만 그렇게 혹독한 빈대의 시련을 겪어야했는지.

최소한 40명쯤의 병사들이 한 방에서 자면서 내게만 그랬으니

내 피부의 예민함인가? 아니면 다른 병사들의 무감각인가?

 

다행이 그날 밤의 빈대사건은 윗전에 보고되었는지 다음 날 위생병들이 분무 소독기를 들고 설쳐댔다.

배치가 완료되기 전까지의 오롯한 내 간절한 바람은 첫날밤을 보낸 병사에 배치되지 않는 거였다.

다행이 다른 곳에 배치되는 꿈을 이뤘다.

 

대한민국 예비역 군인들 이야기 거리 참 많다.

예까지 읽으신 분들의 인내력에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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