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事

사랑이란

들풀처럼1 2005. 12. 1. 20:50

 

아버지가 읍에 있는 작은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계실 때였다. 집을 지키느라 가끔은 심심해하시는 어머니에게 닭을 키워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아버지께서 제안을 하셨고 아버지의 권유대로 닭을 키우기 시작하면서 어머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어머니는 신작로에 나와서 우리를 기다리는 것보다 시간마다 닭장에 들어가 달걀을 빼들고 나오는 일에 더 즐거움을 느끼시는 듯했다. 처음에 세 마리였던 닭은 다섯 마리, 열 마리, 스무 마리까지 늘어갔다. 글쎄, 닭 때문에 우리 가족이 누리는 행복의 양이 늘어간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우리는 어느 아이들보다 풍족하게 계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고 어머니 대신 닭장 안에 들어가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는 알을 두 손으로 소중히 받쳐 안고 나오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모은 달걀을 들고 시장에 나가 팔기도 했다. 그리고 그 돈은 우리의 옷과 책가방, 학용품 등을 사는데 보태어지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어머니는 우리 삼형제를 모아 놓고 중대한 선언을 했다. 내 졸업식이 끝날 때까지는 계란을 먹을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밑 동생이 울상이 된 얼굴로 이유를 물었고, 어머니는

“형의 졸업식날 좋은 옷 한 벌을 해주기 위해서”

라고 말했다.


졸업식은 한 달 가량 남아 있었고, 그 졸업식에서 나는 전교생 대표로 우등상을 받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느이 형은 좋은 옷이 없잖니. 그 날마저 허술한 옷을 입게 둘 수는 없잖아?”

어머니는 부드럽게 웃으며 납득시키셨지만  설명을 듣는 두 동생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며 나는 마음이 아팠다. 동생을 섭섭하게 하면서까지 새옷을 입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엄마가 옷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면 차라리 나는 졸업할 때 어떤 상도 받지 않겠다고 하겠어요.”

슬픈 빛으로 막내동생이 말했다.

“아니야. 엄마는 큰형이 큰 상을 받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단다. 상을 받으러 아들과 함께 연단에 올라갈 그날만 생각하면 가슴이 설레이는 걸.”


그로부터 일 주일이 지나서였다. 어머니가 근심스러운 얼굴로 나를 불렀다.

“달걀이 매일 두 개씩 없어지는구나.”

스무 마리의 닭 중에서 알을 낳는 닭은 열다섯 마리인데 달걀은 매일 열세 개씩밖에 모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처음 하루이틀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지만 일 주일 내내 그럴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너희들이 학교에 가고 나면 주로 닭장 문 근처에서만 왔다갔다 하거든.”

어머니의 말대로 닭장은 마당 한 귀퉁이에 있었고, 대문에서도 한참이나 안쪽으로 들어와야 되기 때문에 쉽게 도둑맞을 염려도 없었다. 설사 도둑이 들었다해도 왜 하필 두 개만 들고 간단 말인가?

 

아버지에게까지 알려 해괴한 그 일의 문제를 풀어 보고자 했지만 해결되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밤마다 대문을 철저히 잠그고


대문 근처에 개를 묶어 두는 방법까지 동원했지만 도둑을 잡지는 못했다. 그 일이 계속되는 가운데 졸업식날이 다가왔다. 약속대로 어머니는 그 전날 읍에 나가 내 옷을 사 가지고 왔다. 붉은색 체크무늬 남방과 곤색 자켓이었다.

“바지는 입던 것을 그냥 입어야겠구나. 달걀이 없어지지만 않았다면 바지도 하나 살 수 있는 건데 그랬다.”


어머니는 새옷을 내놓으면서도 아쉬운 표정이었다.

“여보, 난 정말 너무 기뻐서 연단에 올라가 울 것만 같아요.”

졸업식날이 되어 아끼고 아끼던 한복을 입고 나선 어머니. 그때 우리 모두는 늑장을 부리는 막내동생을 기다리기 위해 한참이나 마당에 서 있었다. 막내동생은 아버지가 어서 나오라고 두 번이나 말한 다음에서야 방문을 열고 나왔다.


“형들 준비할 때 뭘 했니. 어서들 가자.”

아버지가 간단히 주의를 주고 나서 우리 모두 막 몇 걸음을 떼었을 때였다. 제일 뒤에 처져 있던 막내동생이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어머니를 불렀다. 우리 모두 뒤돌아보았을 때 막내동생의 손에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소중히 들려져 있었다. 그제서야 나는 한복 치마 밑으로 코를 삐죽 내밀고 있는 어머니의 낡은 고무신을 바라보았다. 얼마나 오래 신었던 것인지 색이 바래 흰색으로 보이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엄마한테 주려고 샀어요. 하지만 너무 야단치지는 마세요. 달걀 두 개는 어디까지나 제 몫이었으니까요.”


그날 어머니는 연단에 서기도 전에 눈물을 펑펑 쏟아 몇 년 만에 한 화장을 다시 해야했다.

나의 손을 잡고 연단에 올라가면서도 어머니의 눈길은 막내가 내 놓은 하얀 고무신 코에 머물러 있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우리에겐 달걀이단지 반찬으로서가 아니라 사랑의 가교역할을 해 주던 시절이었다.


     - 출처 : 솔로문에서 퍼온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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