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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파일' 이상호 기자의 최후 진술... 검찰, 이 기자에게 징역 1년 구형

들풀처럼1 2006. 7. 14. 18:16

 

"그래도 나는 고발할 것입니다
진실을 법전 속에 가두지 마십시오"

'X파일' 이상호 기자의 최후 진술... 검찰, 이 기자에게 징역 1년 구형

 

2006-07-14 14:49
ⓒ 2006 OhmyNews

 

 이상호(gobalnews) 기자   

 

▲ '삼성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한 이상호 MBC 기자가 지난 해 8월 5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조사에 응하는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2년 전에도 그랬습니다. X파일 내용을 제보받고 앞으로 닥쳐올 날들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순간 스쳐갔습니다.

취재의 과정이 늘 그렇지만, 제보내용을 근거로 저 자신을 비우고 조직의 이해를 비우며 진실과 사실을 채워나가는 고통스런 일들이 시작됐고 형언할 수 없는 우여곡절을 거쳐 결국 'X파일'을 보도할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오늘 이 자리에 나온 만큼, 저로서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더욱이 훌륭하신 재판장님과 검사님, 변호사님 등과 함께 감히 시대의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마저 갖게 되어 영광스럽기도 합니다.

저로서는 재판결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이의가 없습니다. 다만, 검찰 측과는 시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시각의 차이'는 정치투쟁으로 이어지거나 사회 가치 분배를 둘러싼 경합을 낳았지만, 이번 경우에도 관점의 차이가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검찰은 X파일을, 판도라 상자 속의 온갖 흉물을 보고 있지만, 저는 판도라 상자 마지막에 남아있었다는 희망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의 시각으로 보면, 상자를 먼저 빠져나간 흉물들은 훌륭한 교훈이자 정당한 비용으로 감당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법률적 지식이 미천한 만큼, 이 시각의 차이에 대해 몇 말씀 드리는 것으로 최후진술을 대신할까 합니다.

가장 무섭고 장구한 권력, '자본' 앞에서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하고,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로서의 소임을 다하지 못한 불행한 과거가 있었습니다… 암울했던 시절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되겠습니다."

이건 제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의 취임 일성이었습니다. 참 듣고 싶었던 양심의 소리, 상식의 소리였습니다. 저도 아주 반가웠습니다. '이제는 법원도 좀 달라지려나 보다' 기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더디지만 작은 변화들도 목격되고 있습니다.

대법원장께서 취임 일성으로 하신 말씀이라 좀 그렇습니다만,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이라니요? 요즘은 코흘리개 아이들도 아주 쉽게 합니다.

대통령을 '씹는' 정도의 일은 이제는 별거 아니지 않습니까. 대통령을 욕했다고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이 사라지던 때도 아니니까요. 오죽하면 신문을 팔겠다고 1년 내내 대통령 욕만 늘어놓는 언론사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사회의 공적 기능들이 진정 독립해야할 대상은 정치권력이 아니라 이제 자본권력입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지만, 법조계도 마찬가집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법조 브로커 김씨 사건'이나 '군산 지원 골프접대 사건' 등 일부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곳곳에서 돈의 유혹에 무너지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 있지 않습니까?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거대자본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중요한 것은, 적어도 언론과 법조 등 사회의 근간이 자본에 휘둘려서는 그 사회에 희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삼성 X파일 사건으로 불리는 테이프의 내용은 그 같은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X파일은 '이건희 일가'가, 자신들의 사적인 자본의 이익을 도모할 욕심에 돈으로 국가 헌정질서를 문란케 한, 그러한 죄상을 스스로 밝히고 있는 이례적인 자료입니다.

이건희 일가를 비호하려는 그 현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죄상이 역사 속에 가려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재판은, 정치권력에서 자본권력으로 통치의 주체가 이동하고 있는 21세기 초반 한국사회에서 향후 사법정의의 실현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건입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께서 이미 통찰하셨을 것인 바, 이같은 역사적 사건을 재단하기에 검찰이 내세우고 있는 통신비밀보호법은 너무도 군색합니다.

살인범을 쫓는 시민을 도로교통법을 적용해 처벌하려한다면, 그 교통경찰은 도망하는 살인범을 비호했다는 미필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입니다. 이번 사건에서 통비법(통신비밀보호법)은 공동체적 가치의 수호라는 큰 바퀴 앞에 버티고 선 한 마리 사마귀에 불과합니다.

▲ '삼성 X파일'의 내용을 보도한 자사의 이상호 기자가 검찰에 소환된 지난 해 8월 5일 오후 MBC 기자들은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서 '검찰은 국민의 뜻에 맞설 것인가'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건희 일가' 자존심 구겼다는 이유로...

존경하는 재판장님, 눈치 채셨겠지만, 저로서는 본 재판 결과에 대해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재판부에 대한 불신이라기보다는, 원천적으로 검찰 공소의 정당성을 존중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상한 일로 가득한 이상한 시대, 또 무엇이 새롭게 이상할 일이 있겠습니까만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도무지 이건희 일가의 엄청난 범죄 행위는 왜 그대로 놔두고, 그들의 자존심을 구겼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아닌 국가 기관인 검찰이 나서서, 무리하게 저를 기소한 것일까요.

또한 검찰이 적용한 통비법이란 과연 어떤 법입니까? 물론 개인의 통신비밀을 보호해야겠지요.

따지고 보면, 저희 MBC야 말로 개인의 통신비밀 보호를 위해 앞장선 언론사 아닙니까. X파일 보도를 통해 국가 공권력의 무차별적 도청을 고발하였고, 과거 잘못된 관행을 파헤쳤습니다.

그 공로를 인정해 상은 못 줄망정, 도리어 기소하는 검찰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실제 저희 보도로 인해 얼마나 많은 개인들의 통신비밀이 보호될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요는, 보호되어서는 안 되는 비밀도 있다는 것입니다.

검찰이 보호하려는 통신비밀이 과연 어떤 내용입니까? 예를 들어, 국가 헌정질서의 파괴를 모의하는 전두환 일당의 밀담이 녹음됐습니다. 광주 유혈 학살을 계획하는 신군부의 대화내용을 입수했습니다.

마땅히, 저는 백번 보도할 것입니다. 그래도 검찰은 저를 기소하시겠습니까?

전두환 신군부의 정치권력 보다, 더 무서운 게 오늘날 자본권력이라는 게 저의 믿음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법조계도 요즘 브로커 문제로 시끄럽지 않습니까. 잘 아시겠지만, 정치권력은 한철이지만, 자본권력은 장구합니다. 박정희 정권도 20년을 못 넘겼고, 전두환 일당도 10년여 밖에 못 해먹었습니다.

하지만 자본권력은 군부독재처럼 '체육관 선거'조차 필요치 않습니다. 선거 없는 권력, 그게 자본권력이지요. 온갖 불법과 탈법으로 자신들의 자본의 아성만 구축해 놓으면, 만사형통입니다. 대를 이어 그냥 가는 거지요.

'돈에 의한 국권 찬탈 음모', 보호될 수 없어

정치적 구호가 공염불에 그치고, 희망도 비전도 모두 소득이나 수출, FTA… 이런 '돈의 가치'로 매개되며 귀결되고 마는 오늘날, 본격적인 '돈의 거버넌스'-돈의 통치-가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물어뜯고 짖어야할 대상으로 정치권력만큼이나, 자본독재도 중요해졌습니다. 그만큼 X파일 보도가 필요했다는 얘깁니다.

이건희 일가에 의해 모의된, 돈에 의한 국권 찬탈 음모는, 단 한 순간도 보호되어서는 안 될 '반헌법적 통신비밀'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비밀이 검찰을 통해 보호되고, 사법적 절차를 통해 유지된다면, 이 검찰과 사법부는 과연 누구를 위한 누구의 기관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꼭 짚고 넘어가야하는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사건에서 검찰은 매우 특수한 위치에 놓여있습니다.

검찰은 이건희 일가로부터 더러운 돈을 받은 것으로 진술된 당사자입니다. 그리고 관련 사건이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을 피고인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검사는 동일체로 불릴 만큼 견고한 단일 조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자신들의 범죄가 기록된 비밀 테이프가 언론에 공개되었다면, 적어도 자신들에게만은 가혹한 메스를 댈 수 있어야, 비로소 해당 사건을 수사하건, 기소하건 그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불과 간단한 서면조사만으로 자신들에 대해 스스로 무죄를 선고하고, 자신들의 치부를 공개한 기자만을 상대로 사법정의를 펼치겠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그 정의를 지지해주겠습니까.

해서, 본 재판부의 선고는 법조사에 있어서는 중대한 의미가 있겠습니다만, 유감스럽게도 저의 관심의 대상은 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훌륭한 인품의 재판장님께서, 전향적인 판결을 내리지 않으실까 기대는 해봅니다만, 그 역시 재판부 양심의 문제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본 공판에 대한 재판부의 성실한 자세에 대해서는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철저한 심리를 위해 재판부는 보도의 절박성과 정당성의 원천이 되었던, 녹취 테이프에 대한 검증을 실시해주시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어찌되었든 수사과정에서 인간적인 온정을 나눠주신 검사님의 배려에도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 검찰이 '삼성 X파일' 사건과 관련해 이건희 회장과 홍석현 전 주미대사, 이학수 구조본부장에 대해 불기소 결정을 내린데 대해 민주노동당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공동으로 지난 해 12월 14일 오후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역시 더러운 돈 받은 검찰, 스스로에겐 '무죄 선고'

한미FTA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나라 곳간의 열쇠를 내놓으라는 부자 나라의 횡포에, 나라 머슴이 손쉽게 열쇠를 내줬다며 규탄하는 소리가 높습니다.

보다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겠으나 중요한 것은, 문화건 서비스건 행정이건 죄다 돈의 척도로 해체시키려는 금전만능주의 대한 경계는 절대 풀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금전만능주의의 대표적 사건인 금번 삼성의 돈 로비 사건은, 삼성과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는 한미FTA의 음모를 의심케 하는 충분한 사례인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X파일에 대한 문제제기는 정당한 것입니다.

군부독재가 물러가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착착 완성되어가는 이 시기. 여전히 '악법도 법이냐'라며 핏대를 세우고 있는 제 자신이 어찌 보면 처량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도그마가 그렇듯이, 법도 닫히면 죽게 됩니다. 법은 현실을 그리기 위해 고안된 캔버스에 불과하며, 풍경이 너무 크니 이 캔버스 속으로 들어오라고 검사님처럼, 강제해선 안 될 것입니다. 더 큰 캔버스로 더 큰 풍경을 담아내는 재판부와 검찰이 되어주시길 진심으로 기대합니다.

부디 재판장께서는, 진실들을 법전 속에 가둬두지 마시고, 사회 속에 끌어내 이성이 회복되는 사회를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