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미국이 빠진 두번째 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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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주도하고 영국이 맞장구치며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 때 제일 먼저 반대 깃발을 들어올렸던 사람은 ‘미국의 양심’이라 불리는 노엄 촘스키 교수였다. 그는 두 가지 이유를 들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첫째, 미국은 이라크의 막대한 석유자원을 장악하려는 것이며, 둘째, ‘테러와의 전쟁’을 빙자하여 세계 여러 나라를 동원하는 것은 유일 초강대국 미국이 저지르는 일방주의의 횡포라는 것이었다. 그 비판의 칼날은 조지 부시 대통령을 정면으로 겨누고 있었다. 부시가 내세운 침공 이유는, 이라크는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와 연계되어 있으며 대량살상 화학무기를 제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역시 세계적 신뢰를 받고 있는 교수는 용한 점쟁이 뺨 칠 지경이었다. 촘스키 교수가 덮어두었던 침묵의 말이 적중했다. 50만명을 헤아리는 미군들이 이라크를 샅샅이 뒤졌지만 화학무기는 흔적도 없었다. 그리고 알카에다와의 연계설도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는 채 오늘에 이른다. 침공의 이유가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는데도 미국이 이라크에서 물러나지 않는 것은 촘스키 교수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라크 정책의 실패로 공화당은 지난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그리고 토머스 릭스라는 기자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이 대실패했음을 <대실패>(Fiasco)라는 책으로 보여주었다. 미국의 대실패는 군사 만능주의가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결론이다.
처음에 후세인 군대가 어이없을 정도로 무너지고 부시 대통령이 항공모함 위에서 승전을 선언하는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보면서, 나는 불현듯 ‘저건 미국이 베트남전 다음에 두번째로 빠지는 늪이다’ 하고 생각했다. 그건 작가로서의 직감도, 무당끼의 발동도 아니었다. 그 순간 내 경험적 판단이 곤두섰던 것이다.
나는 소설 취재차 10여년 전에 사우디아라비아에 15일 동안 머문 적이 있었다. 그 때 나는 사흘이 지나지 않아 왜 그들이 하루에 다섯 차례씩 기도를 하는지 알아차렸다. 그 평소의 의문이 풀리면서 불모의 땅 중동과 13억 무슬림들의 심층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폭염의 땅에서 생존의 인내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었고, 알라신은 그들의 가슴에서 태양처럼 이글이글 타며 그들을 이끌고 있었다. 그 살아있는 신을 모독할 때 그들은 참을 수 없어하며, 신의 명예를 지키고자 죽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다.
미국은 없는 화학무기를 있다고 오판했듯이 무슬림들의 그런 마음도 투시하지 못했다. 미국의 무력은 후세인을 제거할 수는 있어도 이라크인들의 영혼 속에서 알라를 제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미국은 새로 수십만 병력을 증파해도 끝내 이라크에서 패배할 것이다. 베트남에서 그랬듯이.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호찌민과 정글이 있었고, 이라크인들에게는 알라신과 사막이 있다.
후세인의 사형이 그나마 타당성이 있으려면, 미군이 이라크 땅에서 완전히 철수하고, 이라크인들의 자유선거로 이라크인들의 정부가 세워지고, 이라크인들의 재판을 통해 사형이 집행돼야 한다. 이번 재판이 이라크인들이 한 것이라고, 이라크는 지금 종교 내전상태라고 말하지 말자. 그건 또 서로를 모독하는 새로운 거짓말이니까.
조정래/작가·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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