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의 강변 둔치에는 가을걷이가 끝나면 가설극장이 열리곤 했었다.
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유성기 외엔 없던 터라 확성기 소리만 들려도 자극되었고 애수에 찬 노랫가락이 확성기로 멀리 퍼지면 인근 마을은 물론 인접 면까지도 구경거리가 되는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오다 이 유혹의 소리가 들리면 온통 설레었다.
몇 시에 어디서 만나자서부터 추울 것이니 두툼한 옷가지도 챙기자, 늦게까지 볼라치면 배도 출출할 테니 고구마라도 준비하자는 등
섶다리를 건너 장대꽂아 세워 만든 포장막이 극장에 도착하면 공연 시작 전에 들어가질 않았다.
않았다는 표현보다는 못했다가 옳다. 입장료 때문에
다행히 공연 마지막 날은 공연이 웬만큼 진행되면 입구지킴이도(당시 기도라고 함) 입장료를 깎아주기도 하고 끝내는 길을 터주고 입장을 눈감기도 했다. 그들에게 안쓰러움의 염치가 있어서
공연 전엔 늘 광대가 등장했는데 남장을 한 여자이거나, 여장을 한 남자이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오로지 재치와 몸짓으로 관중을 쥐락펴락했다.
그들은 진정한 광대였다.
광대,
당신은 어떤 광대입니까?
탈을 안 쓰셨습니까?
다행입니다.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광대나물)
우리의 이웃에는 어떤 광대가 있습니까?
정치인으로 인권탄압과 군부독재에 복무하지 않았으며 公約을 空約化 않고, 지역 혈연 학연으로 엮어진 온정주의를 거부한 광대
경재인으로 재산의 축적과 세금으로부터 떳떳하고 분식회계와 비자금 관리 없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확실하게 단절한 광대
법조인으로 정의로운 판단에 숨죽였고 거미줄 같은 법이 되지 않도록 덩치 큰 것도 미약한 것들도 모두 걸리게 하는 광대
노동자로서 노동 권력에 봉사하거나 동원되지는 않았으며 당신의 존재의식을 배반하고 정당한 파업에 손가락질, 안정된 직장인들을 철법통이라며 깎아 내리지는 않는 광대
종교인으로 모시는 분들처럼 사는 삶을 살아가며 시늉으로만 교인처럼 살지 않려는 광대
군인이 정치세력화 할 때, 경재인이 정경유착을 할 때, 법조인의 판결이 애매 할 때, 노동자 지도부가 부도덕할 때, 독재의 길이었고, IMF을 자초했고, 억울한 판결에 분노했고, 절망하고 좌절했으며 교인이 줄고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아비로서 자식으로서 어떤 광대를 쓰고 사는지
어느 싸이트에 실린 광대나물을 보고 내 안의 나을 돌아본다.
'世上事'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 시대의 어른 신영복 (0) | 2007.02.01 |
---|---|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어머니 "테레사 수녀" (0) | 2007.02.01 |
비정규직, 더러운 차별 (0) | 2007.01.05 |
조정래 칼럼/ 미국이 빠진 늪 (0) | 2007.01.02 |
윤도장 (0) | 2006.10.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