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事

구속 수사 이후

들풀처럼1 2005. 10. 18. 19:11
                                  구속 수사 이후
                                                                  도종환칼럼
▲ 도종환 시인
그 해 유월, 여름 햇살처럼 여론도 따갑게 끓어오르던 날 나는 교무실에서 성적표를 쓰고 있다가 다섯 명의 건장한 경찰들에 의해 끌려가 구속되었다. 벌레가 기어다니는 마룻장 날바닥에 앉아 밥을 먹었고, 변이 직접 내려다보이는 변기통 위에 앉아 하루 세 번 식기를 닦았으며, 사회적 이름을 빼앗긴 채 가슴에는 수인번호 376번이 달려 있었다. 검찰에 불려갈 때마다 거미줄에 날개를 묶인 곤충처럼 포승줄로 결박당하였다. 검찰 조사를 받는 시간보다 조사를 받기 위해 아침부터 하루 종일 결박당해 있는 것이 더 힘들었다. 반말로 이름을 부르고 내 시집 제목을 거론하며 비웃어대고 내가 무슨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특정집단의 사주를 받은 것처럼 몰아부칠 때면 당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나 그런 모멸의 순간보다 더 힘든 것은 제자들과 부딪치는 시간이었다. 사람을 찌르고 들어와 있던 제자가 복도에서 밥통이나 국그릇을 밀고 다니며 퍼주는 밥을 식구통으로 받고 있을 때였다. 견딜 수 없는 참혹함과 난감함에 몸이 떨렸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목욕시간이었다. “목욕 준비!”라는 명령이 시달되면 모두 발가벗고 몸에 비누칠을 한 채 서 있어야 했다. 교도관이 차례로 방문을 따면 복도 끝에 있는 수도까지 달려가 대야로 서너 번 끼얹어 주는 물을 뒤집어쓰고 돌아오는 목욕이었다. 그런데 차례로 방문을 따주면서 목욕을 시키다보니 옆방에 있는 제자와 복도에서 만나게 된다. 발가벗은 채 제자 앞에서 뛰어다녀야 하는 시간은 나에게 가장 큰 형벌 중의 하나였다.

 

그런 수치심과 모멸감을 견디는 것보다 더 마음 아픈 것은 밖에 두고 온 자식들이었다. 엄마도 없는 자식들을 두고 너마저 감옥에 들어가면 고아가 되는 아이들을 늙은 우리가 책임지라는 말이냐고 아버지는 펄펄 뛰셨고, 나와 의절하겠다고 하셨다. 아들이 처음 보낸 글씨로 편지를 보냈을 때는 정말 많이 울었다. 남의 자식 바르게 가르치자는 일로 바쁘게 뛰어다니다 내 자식에게 글씨 한 번 가르치지 못하고 감옥에 들어와 있는데 저 혼자 배워서 쓴 서툴고 비뚠 글자 하나씩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감옥 벽을 뾰족한 것으로 그어 십자가를 새겨놓고 그 앞에 무릎 꿇고 울면서 기도했다. “하느님, 당신이 이 아이들을 키워주십시오” 하고.

 

재판을 받는 날 재판시간에 맞추기 위해 집안 전체가 정신없이 분주한 사이, 어린 딸은 놀이터에 나가 놀다가 떨어져 팔이 부러졌고 뼈가 조각조각나서 오래 고생하였다. 내가 구속되면서 우리 집안도 나도 그처럼 조각조각났다. 그 사건으로 내가 대법원에서 받은 최종 판결은 벌금 30만원 형이었다. 자동차 접촉사고를 내도 벌금 30만원은 더 나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나는 구속되었고, 학교에서 해임되었으며, 법적 인정을 받고 다시 복직할 때까지 10년간 해직교사로 살아야 했다. 석방 후에도 버클리대 강연 초청을 받았지만 구속 전력 때문에 내 보내주지 않았다. 국외에 나갈 일이 있을 때마다 제동이 걸렸다.

 

그 독재정권 시절 검찰권의 중립, 사법권의 정의를 위해 위에서 내려오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며 ‘사즉생’의 각오로 사표를 내는 검사를 나는 보지 못했다. 법을 위반한 사실이 있으면 법에 근거한 이성적인 논의와 절차를 거쳐 재판하되 무조건 사람을 구속해서 재판해야지만 검찰의 권위가 선다는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나하고 생각이 다르면 반드시 구속해서 처벌해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감옥에 보낸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도종환/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