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上事

[스크랩] 인구감소 막으려면 양극화를 해소하라

들풀처럼1 2006. 5. 12. 13:16

인구감소 걱정하는 정부, 헨리 조지의 대안에 귀 기울이라

 

 

양극화의 대안으로 여러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경제적 양극화 중 자산 격차를 벌리는 주범으로 부동산이 지목되고 있다. 부동산의 양극화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19세기 미국의 사회사상가인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대안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헨리 조지라는 이름은 사람들에게 생소하며, 그의 사상은 현재 한국사회에서 기득권과 주류학자, 보수언론 등에 의해 왜곡되고 있다. 특히 한국 기독교계는 헨리 조지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있다.

헨리 조지의 대표 저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1879년 발간)은 부가 증가하는 데 따라 빈곤도 증가하는 원인을 탐구하고 그 해결책을 단순명료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성경을 정치경제학의 언어로 풀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절대적인 창조주를 강력하게 증거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헨리 조지의 사상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양극화 해소 안 되면 인구도 계속 줄어들 것"

"맬서스 학설은 라자로가 문전에서 배고파 기진맥진할 때 잔치를 하고 있는 부자가 문을 닫아 걸 수 있고, 빈자가 적선을 청할 때 부자가 편안한 마음으로 호주머니의 단추를 잠글 수 있고, 부유한 기독교인이 주일에 화려하게 장식된 예배당 좌석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하면서 바로 이웃에서 고통을 당하는 비천한 빈민에 대해서는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철학을 제공한다."

헨리 조지는 당시 주류 학설인 임금기금설과 맬서스의 인구론, 다윈의 진화론 및 사회진화론,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토지사유제 등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이 이론들은 공교육 등을 통해 사람들에게 각인돼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이론 분야에서도 망령처럼 살아 있다.

헨리 조지는 빈곤의 발생 원인이 인구가 많아서가 아니라 정의(正義)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단언했다. 이러한 지적은 죽은 맬서스가 신맬서스주의 등으로 부활, 아직까지 활개치는 현실에서 의미가 크다.

인구론을 정면으로 부정한 헨리 조지는 평등이 보장되는 상태에서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이 자연스러운 창조주의 뜻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평등이 보장되는 상태에서 인구의 자연증가는 개인을 가난하게 하기는커녕 언제나 부유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지적은 심화되는 양극화, 치솟기만 하는 집값과 양육비 등으로 결혼과 출산을 꺼리는 이들이 늘어나는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정부는 인구감소를 우려하지만, 아이들을 낳아도 제대로 기르고 교육하기 어려운 현실을 모른 척한 채 어떻게 인구가 늘어나길 바란단 말인가? 경제적 양극화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인구는 계속해서 감소할 것이다.

기득권층이 우려먹는 임금기금설, 근거 없다

"자연법에는 모든 인간이 자연을 사용하고 향유할 권리, 노력을 자연에 투입할 권리, 자연으로부터 대가를 수취하여 소유할 권리의 평등성이 폭넓게 그리고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자연은 노동에게만 주므로 노동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 배타적 보유의 유일한 권원(權原)이다."

헨리 조지는 임금기금설도 부정했다. 임금기금설이란 일정한 사회 상태에서는 임금으로 지급되는 금액이 일정하며 1인당 임금액은 이 총액을 노동자 숫자로 나눈 것이라는 주장이다. 따라서 한 노동자의 임금 인상은 다른 노동자에게 갈 몫을 옮겨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집단적인 임금 인상 노력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논리다.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요구에 대해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의 저임금 구조를 개선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한국 기득권층의 배경에는 이러한 임금기금설이 놓여 있다.

헨리 조지는 이를 부정했다. 그는 임금은 어딘가에 이미 마련되어 있다고 생각되는 자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노동에 의해 생산된 것이라고 설파했다. 아울러 자연법은 노동의 권리 외에 어떠한 권리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늘날 한국처럼 일하고 싶어도 일할 대상이 없는 사람들, 혹은 일한 만큼 대가를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헨리 조지의 이런 말은 절실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노동을 생산에 투입하는 것이 배타적 보유의 유일한 권원(權原)이라는 헨리 조지의 말대로 노동하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은 도적질과 불한당(不汗黨)의 심리다.

이른바 '재테크'를 통해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도 부자가 될 수 있는 요즘 세상에서 공허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이는 변함없는 진리이다.

"토지사유제는 자연스런 현상? NO! 강탈의 결과물"

"인간이 창조주의 평등한 허락을 받아 이 땅에 존재한다면 우리 모두에겐 창조주의 하사품을 평등하게 향유할 권리가 있다. 또한 자연이 공평하게 제공하는 모든 것을 평등하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도 있다. 이것은 자연적인 권리이며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사유제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류의 공통적인 정신과 종교에 반(反)하는 것이라는 점을 증명하면서 토지사유제를 부정했다.

헨리 조지는 "역사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토지사유제는 강탈에 의해 생겼다"며 "어느 곳이든 과거사를 되돌아볼 수 있다면 최초엔 모든 사람이 토지공유제를 인정했으며 토지사유제는 강탈의 결과이자 힘과 속임수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씨가 빨간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며 부동산투기를 했다는 '빨간바지 말죽거리 신화'가 떠오른다. 고위층들이 부동산투기를 하고 돌아다녔던 그곳에서 철거되어 어디론가 밀려난 사람들의 눈물과 피, 그리고 사무친 죽음이 아직도 그 땅에서 울부짖는다. 그들의 한을 풀어줄 정의는 여전히 실현되지 않고 있다.

아울러 헨리 조지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왜곡하는 불합리한 사회를 개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특히 신의 뜻을 내세우는 기독교계도 이 일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빈곤에서 생기는 고통과 야만성을 하나님의 불가사의한 섭리로 돌린다거나 두 손을 모으고 만물의 아버지 앞에 가서 대도시의 궁핍과 범죄의 책임을 미룬다면, 형식상으로는 기도일지 모르나 실제로는 신성모독이다. 영원하신 존재를 폄하하는 행위이다. 정의로우신 분을 욕되게 하는 행위이다."

토지는 인류 모두의 것이다

헨리 조지는 토지가 인류 모두의 것임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이 불변의 진리를 설파한 것은 헨리 조지만이 아니다.

이슬람 경전 <코란>에는 "대지는 알라의 것이니, 그 분의 뜻에 따라 그 분의 종복들이 상속하리라”(코란 7:128)라고 말한다. 백인들에게 땅을 빼앗긴 시애틀의 인디언 추장은 백인에게 보낸 유명한 편지에서 "신선한 공기와 물방울이 우리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것을 사가겠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간디의 후계자로 '인도의 성자'로 불리는 비노바 바베도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라며 토지헌납운동인 '부단운동'을 전개했다. 2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그는 인도 전역을 맨발로 걸어다니며 지주들을 만나 가난한 이웃들에게 땅을 내어주도록 설득, 스코틀랜드만한 토지를 헌납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일본 '무교회주의'의 창시자 우찌무라 간조도 "영원한 거처를 가진 우리는 기꺼이 땅을 다른 사람에게 양도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얼마 전 한국 기독교계에 잔잔한 감동을 전한 최춘선 할아버지는 우찌무라 간조 문하에서 직접 가르침을 받아 자신이 물려받은 김포공항 일대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지하철에서 맨발로 다니며 회개와 민족의 통일을 전하다가 죽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 백작도 헨리 조지의 감화를 받았다. 톨스토이는 모든 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 뒤 남은 생애 동안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며 인간은 사랑으로 산다'고 전하다가 조그만 기차역에서 생을 마감했다.

 

고영근(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부장)

출처 : 토지정의시민연대 공식 블로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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