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내꿈은
도종환
어릴 때 내 꿈은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뭇잎 냄새 나는 계집애들과
먹머루빛 눈 가진 초롱초롱한 사내녀석들에게
시도 가르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주며
창 밖의 햇살이 언제나 교실안에도 가득한
그런 학교의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플라타너스 아래 앉아 시들지 않는 아이들의 얘기도 들으며
하모니카 소리에 봉숭아꽃 한 잎씩 열리는
그런 시골학교 선생님이 되는 거였어요.
나는 자라서 내 꿈대로 선생이 되었어요.
그러나 하루 종일 아이들에게 침묵과 순종을 강요하는
그런 선생이 되고 싶지는 않았어요.
밤 늦게까지 아이들을 묶어 놓고 험한 얼굴로 소리치며
재미없는 시험문제만 풀어주는
선생이 되려는 것은 아니였어요.
옳지 않은 줄 알면서도 그럴 듯하게 아이들을 속여넘기는
그런 선생이 되고자 했던 것은 정말 아니였어요.
아이들이 저렇게 목숨을 끊으며 거부하는데
때묻지 않은 아이들의 편이 되지 못하고
억압하고 짓누르는 자의 편에 선 선생이 되리라곤 생각지 못했어요.
아직도 내꿈은 아이들의 좋은 선생님이 되는 거에요.
물을 건너지 못하는 아이들 징검다리 되고 싶어요.
길을 묻는 아이들 지팡이 되고 싶어요.
헐벗은 아이들 언 살을 싸안고 옷 한자락 되고 싶어요.
푸른 보리처럼 아이들이 쑥쑥 자라는 동안
가슴에 거름을 얹고 따뜻하게 썩어가는 봄흙이 되고 싶어요.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
아이들의 이름을 누구보다 빨리 기억해 불러 주는 선생님,
수업 시간에는 그 이름 하나하나를 높낮이 없는 눈으로 바라볼 줄 아는 선생님,
뿔난 송아지 같은 아이들은 학년 초에 꽉 잡아야 1년이 편하다고 신념처럼 떠벌이고 다니지 않는 선생님,
점심 시간에 무슨 맛있는 음식을 먹을지 고민하기보다는 아이들이 모두 도시락을 싸가지고 왔는지 늘 관심을 가지는 선생님,
부모의 직업이나 아파트의 평수, 혹은 자가용의 배기량에 따라 아이들을 구분하지 않는 선생님,
학급 환경 정리를 하는 데 화분이며 거울이 필요하다고 부모들에게 전화를 걸지 않는 선생님,
잘 노는 것도 중요한 공부라고 아이들 앞에서 한 번이라도 자신 있게 말한 적이 있는 선생님,
학부모를 만났을 때 아이들의 성적 이야기를 제일 중요한 화두로 삼지 않는 선생님,
영화 '여고괴담'을 보고 나서 교사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불순한 영화라고 벌컥 화를 내지 않는 선생님,
교과서나 문제지 이외의 책도 많이 읽는 선생님,
내가 멋진 교육을 해야 학교가 변하고 나아가 나라가 변한다고 믿는, 소박하지만 신념이 강한 선생님,
전교조나 참교육이라는 말을 들을 때 색안경을 끼고 대하지 않는 선생님,
북녘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는 현실에 대해 아이들과 단 한번이라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선생님.
바로 그런 선생님이 내가 좋아하는 선생님이다.
- 안도현 산문집 "외로울 때는 외로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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