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의 제자들과 서울 인사동에 있는 경인미술관 아틀리에에서 만났다.
이곳에서는 경덕도예공방을 운영하시는 김덕희씨의 청자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고
김덕희 씨는 청자의 메카 강진에서 '청자는 푸르름의 정령' 이란 신념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아주 자주 만나는 제자의 와이프다.
전시품 둘러 보며
'빙열(氷裂)' (청자나 백자를 구워 식히는 과정에서 생기는 거미줄 같은 잔 금)이
없는 것이 특색이다 싶었다.
▲ 김덕희 작가의 전시작품 일부
제자들과 만난 서로의 얼굴 확인은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성형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라 그 때 그 얼굴 그대로였다.
이를 두고 원판불변의 법칙이라 해야겠다.
제자들은 내게 동안이니, 세월을 거슬리고 산다느니 하며 덕담을 날렸다.
이럴 때 기분 나쁠 사람 누가 있겠나?
인사동 거리를 촌놈의 시각으로 둘러 보러 제자들과 나섰다.
맨 먼저 들어 온 게 날씨와 유행이 갸져 온 하의실종의 옷차림이었다.
속옷까지 보이는 감당하지 못한 짧은 복장은 보기 좋은 게 아니라 오히려 보기 민망했다.
평지에서도 이정도면 계단에서는 어찌 될지
참 걱정도 팔자라고 해야 하나?
몇군데 전시장을 들렸으나
시선을 끄는 곳은 동전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작가의 속내을 어찌 알까마는
내심 돈에 구속되어 살아가는 오늘을 풍자적 표현한 것으로 이해했다.
▲ 어느 갤러리에 전시된 동전으로 만든 마천루, 아이디어 짱
▲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이른 저녁식사 겸 술자리에 들었다.
사회자 없이도 추억들을 끄집어내고 분위기를 달구며 너무 자연스랍게 40년 전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때
"1. 일하시는 대통령
2. 이 나라에 지도자
3. 3.1정신 받들어
4. 사랑하는 겨레 위해
5. 5.16 이룩하니
6. 6대주에 빛나고
7. 70년대 번영은
8. 팔도강산에 뻗쳤네
9. 구국의 새역사를
10. 10월 유신 정신으로"
줄줄이 외고 있는 제자가 있었다.
더 놀란 것은 당시 아버지가 이장을 하고 있었는데
박정희와 김대중의 대선 대결에서 김대중표가 더 나왔다고
온갖 협박에 시달려 결국 서울로 이사 오게 되었다고 분에 떨었다.
당시 박정희는 쿠데타 성공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72년 10월 18일 비상계엄을 선포한 뒤 그 달 27일 유신헌법을 공고했다.
그리고 11월 21일 비상계엄하에서 국민투표로 유신헌법을 확정 공포했다.
이때 투옥되고 사형받은 사람들 너무 많다.
당시 공무원은 여러 형태로 권력의 개였고
박정희 집권 18년 평가는 아래처럼 떠 돌고 있다.
2. 쿠데타로 민주주의 유린
3. 파괴적 공업화로 산업 균형을 파괴
4. 대기업 편향으로 공생 경제 파괴
5. 고문 투옥 등 범죄 자행"
당시 교육현장 바로가기
If you tremble indignation at every injustice then you are a comrade of mine
네가 항상 부조리에 분노한다면 너는 곧 내 동료다.
-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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