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우 前 청와대 정책실장·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
7월3일 국회를 통과한 사학법 재개정은 충격 그 자체다. 2005년 말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던 개정 사학법은 만시지탄은 있었으나 부패 사학에 대한 최소한의 견제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참여정부 최고의, 혹은 유일의 개혁입법으로 불러주었다. 비리사학으로 인해 눈물 흘리는 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들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이 법의 재개정으로 개혁의지는 푸른 연기처럼 공중에 사라졌고, 부패사학에 대한 감시, 견제는 물 건너 가버렸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재개정이 아니고 재개악이다. 한나라당이야 원래 수구정당이니 그렇다 치고, 개혁을 내걸었던 열린우리당과 통합민주당은 이번의 개혁 후퇴에 대해 뭐라고 변명할지 궁금하다.
이 법의 최대 쟁점은 이사장 친·인척의 학교장 임용, 이사장의 겸직 허용 문제도 있지만 역시 개방이사를 4분의 1 두는 조항인데, 이에 대해서 사학에서는 사유재산권 침해라고 보는 반면 개혁진영 쪽에서는 학교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장치로 본다. 이사회에 공익을 대표하는 인사가 4분의 1 참석하게 되면 의결권에 영향을 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의 파수꾼 노릇은 할 것이 아닌가.
과거에는 일부 사학에서 상식 밖의 비리, 반칙이 벌어져도 견제장치가 없다 보니 학교가 썩을 대로 썩어 환부가 곪아 터지고 나서야 비로소 교육부가 임시이사 파견이다 뭐다 해서 사후약방문식 대처를 해왔다.
그 과정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교사들의 고초, 교육의 파행, 학생들의 피해, 사회적 비용은 세상에서 제일 큰 저울을 가져와도 측량하기 어려웠다. 우리나라 교육이 양적으로는 세계 최고이지만 질적으로 떨어지는 것도 상당 부분 이런 구조적 문제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005년 말 사학법 개정은 역사의 큰 진전이었고 참여정부의 꽃이었다.
그런데 그 꽃은 어디로 갔나. 불과 1년 반이 흐른 지금, 그 법을 통과시켰던 주역들이 개혁 취지를 무산시키는 정반대의 법을 몸소 통과시키고 있는 현실은 자가당착이라도 이런 자가당착이 없다. 모처럼 한 골 넣었던 공을 꺼내어 ‘노 골’을 선언하고, 거꾸로 자살골을 차 넣는 것은 축구가 아니다. 이는 정의와 민주를 이야기하기 전에 신의와 수준의 문제다.
21세기는 민주주의의 시대이고, 어떤 조직도 민주적 원리에 어긋나게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하물며 공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할 학교에 이르러서야 더 말할 필요가 있으랴. 사학에 투입된 개인의 재산은 학교 설립 전에는 사유재산이었지만 일단 학교가 설립되고 나면 공공재산으로 간주된다. 당초 사학법 개정을 앞장서 반대했던 사학법인연합회의 윤리강령을 보더라도 “사학을 위해 제공된 재산은 공공재산”이라고 분명히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사유재산을 이유로 공익이사의 임명을 반대하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외국 사립학교의 예를 보더라도 공익이사의 임명은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사립 중·고등학교 예산에서 재단전입금의 몫은 2%에 불과하고, 98%는 학생등록금과 정부지원으로 메워 왔으니 사유재산권의 논리는 더욱 근거가 박약하다.
백보 양보하여 사유재산의 논리를 인정해준다고 하자. 단적인 예로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인 기업을 보더라도 의사결정기구가 사유재산에 의해 배타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미국 대기업의 이사회는 사외이사가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면서 경영상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유럽 기업은 사외이사 대신 노조 대표가 이사회 또는 감사회에 참석한다. 이익을 목표로 하는 기업이 이럴진대 공익을 먼저 생각해야 할 학교에서 4분의 1의 공익이사를 기를 쓰고 반대할 이유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사유재산의 사용도 무소불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공익의 테두리 안에서 절제된 형태로 이루어져야 한다.
문제가 없는 건실 사학의 경우에는 개방이사가 번거롭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들 학교에는 4분의 1의 공익이사가 참석하더라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을 것이니 이들의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이번에 사학법 재개악을 밀어붙인 사람들은 이사회에 전교조나 민교협 회원이 참석하는 것을 꺼리는 모양인데, 이들의 이사회 진출은 처음부터 가망이 없었다. 설사 1명이 비집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의사결정을 좌우하기는 불가능하고, 다만 부패사학의 비리, 전횡을 견제하는 최소한의 기능은 해내지 않을까 기대되던 터였다. 장독이 깨진 뒤에 주워담는 것보다 예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데, 이제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사학법 파동은 우리나라 수구집단의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들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속으로는 민주주의를 싫어함을 만천하에 고백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역사의 진보를 두려워하고, 기득권에 안주하고자 하는 수구집단의 방해가 극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민주화 물결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대의 대세이며, 여기에 학교도 예외일 수 없다.
이번의 씻을 수 없는 반개혁에 대해 역사는 준엄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사학법 개악의 주인공들은 앞으로 민주, 개혁을 입에 담지 말라. 근조, 학교 민주주의! 그대는 태어난 지 1년 반, 겨우 걸음마를 떼다가 저 세상에 갔구나. 그러나 시대의 흐름을 타고 환생할 것을 믿노라. 정의를 지키는 약자들이여, 울지 마시라. 사필귀정, 역사는 그대의 편이리니.
가져온 곳 : 경향신문에서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707061830371&code=99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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